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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님들 성경 한번씩 읽어보세요.

인생에도, 역사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는

책 중의 책입니다. ^^

 

하나님의교회, 성경상식 - 성전:솔로몬 성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의 공간.

광야시대의 성막에 이어

예루살렘에 세워진 솔로몬, 스룹바벨, 헤롯 성전.

그리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전.

그 경이로운 현장을 들여다본다.

 

성전 건축의 기틀을 마련한 다윗.

 


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의 2대 왕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옮겨올 수

있었다.   다윗은 미리 쳐놓은 장막에 언약궤를 안치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제사 후 백성들에게는 남녀 불문하고 각 개인마다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궤 앞에서 봉사하도록 레위 사람인 아삽과 그 형제들을 찬양단과 연주단으로 임명하고,

오벧에돔과 68명의 형제들,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는 문지기로 세웠다.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언약궤 앞에서 항상 나팔을 불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장막과 번제단은 예루살렘에서 8km 거리에 있는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   기브온 산당에서는 사독과 그 형제들이 제사를 주관하며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은 악기 연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고, 여두둔의 아들은 문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언약궤를 안치하면서부터 예루살렘은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윗은 언약궤를 보관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 일러주셨다.

 


다윗은 아지 어리고 연약한 아들 솔로몬을 위해 성전 건축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마련해두었다.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모으고 석수들을 시켜 건축에 사용할 돌을 다듬게 하는 한편,

엄청난 양의 철물과 목재. 금은 등을 준비했다.

 


성전을 건축할 장소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모리아산.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윗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던 이곳을 성전 부지로 매입했다.

현재 이곳은 성전산(Temple mount)이라 불리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은 성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와 축복을 구한 후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착수했다.

출애굽 후 480년이 지나고 솔로몬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다윗의 숙원사업이었던 성전이 완공된 건 그로부터 7년 6개월 후였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 두로(티레)왕 히림과 협정을 맺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레바논의 백향목을 조달해주고 벌목에 능숙한 시돈 사람들이 힘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히람은 백향목과 잣나무 등을 조달하는 대신 왕궁에서 먹을 식료품을

달라고 요구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해마다 밀 2만 섬과 기름 20석을 제공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하는 데만 이스라엘 전국에서 동원된 일꾼은 30,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3교대로 번갈아가며 한 달은 레바논에 파견되어 일하고 두 달은 본국에

머물렀다.  거기에 짐꾼 7만 명, 석수 8만명, 작업반장이 3300명이었으니 총인원 183,300명이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다.   돌은 채석장에서 완전히 다듬어온 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건축하

는 동안 성전 건설 현장에서는 망치, 도끼 등의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는 데 비용과 자재를 아끼지 않았다.

성전 내부와 장식은 잣나무, 백향나무 같은 귀한 목재와 막대한 양의 황금, 청동이 사용되었다.

'여호와의 집'이라 불린 솔로몬 성전은 영구적인 성경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큰

절기가 있을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성전의 구조와 기명들..

 


성전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띠었다.

길이는 60규빗(규빗:남성 팔뚝 길이로 50cm 정도)으로 약 30m 넓이는 20규빗으로 10m

가량이었음을 감안 할 때 건평은 100평 조금 안되는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분되었다.

뜰, 성소, 지성소가 그것이다.   바깥뜰은 백성들을 위한 장소로 허락되었고, 성전 안뜰은

제상장들을 위한 장소였다.   안뜰에는 번제단과 '바다(sea)' 모양의 거대한 수조가 있었는데,

바다는 직경이 5m, 무게는 30t에 달했다.

성전 양편으로는 청동대야가 5개씩 놓여 있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동쪽으로 나 있었다.

현관 양편에는 높이 12m, 둘레 7m의 청동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성전 방향으로 오른편에 세워진 기둥은 야긴, 왼쪽 기둥은 보아스라 이름했다.

 


성전의 외소, 즉 성소는 길이 40규빗으로 20m 정도였다.

성소 내부 벽면은 금박을 입히고, 만개한 꽃, 종려나무, 그룹(천사)이 돋을새김으로 꾸며졌다.

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제단과 금으로 만든 떡상, 열 개의 금촛대, 금으로 만든 꽃장식,

등잔, 불집게, 금대접, 잔, 숟가락, 향로 등의 기구와 기명들이 배치됐다.

 


성소를 지나 더 안쪽에 위치한 밀실은 '내소'라고도 하고, 가장 거룩한 곳이라 하여 '지성소'

라고도 불렀다.   지성소는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동일한 20규빗이었다.

즉 사방이 각각 10m의 정방형 구조였는데, 사면의 벽은 금박한 백향목이 사용되었다.

문의 돌쩌귀(경첩)는 금으로 만들어졌다.   지성소 안에는 오로지 하나의 상자만이 보관됐다.

바로 언약궤다.   그리고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성소에는 1년 중 단 하루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기원전 960년경 솔로몬은 7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성전이 완공되자 칠월 절기 행사에 장로,

부족장들,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회중들을 소집했다.

그날의 주요 의전은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는 것이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회중들은 언약궤 앞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안치하고 성소에서 나올 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위시한 찬양단과

연주단이 하나님께 감사의 챤양을 올렸다.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찼다.

 


솔로몬이 봉헌기도를 마쳤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랐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며 제사장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진행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회중은 불이 내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렸다.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

 


솔로몬의 지휘 아래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

자르 2세, Nebuchadnezzar ll)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기원전 587년경의 일로, 성전이

완공된 지 약 370년이 지난 때였다.

하나님과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다(예레미야 44:22~23).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수백만 명의 사망자, 수십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을 침공했던 느부갓네살은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과 기명들을

훼손하고 약탈해간 상태였는데,  성전과 왕궁, 예루살렘의 온 도시를 불태웠다.

성전이 재건되는 역사가 일어난 건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키루스)가 바벨론을 정복해

포로 귀환을 승인하면서 실현됐다.

 

 


WRITTEN BY
뚱뚱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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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전건축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했는데 정리가 잘되어있어서 좋네요!ㅎㅎ
  2. 봉헌식을 드릴 때 솔로몬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3.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가 너무나 끔직합니다~
  4. 성전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5. 성전건축에 대해 쉽게 이해가 되네요^^
  6. 구약의 성전 하면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쉽고 재밌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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